‘한번 사는 인생을 즐기자'는 의미를 가진 욜로(You only live once)와 ‘일과 삶의 밸런스를 찾자’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등 라이프 스타일을 설명하는 다양한 용어들이 회자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하는 일상의 가치와 삶의 질이 어디에서 발견되는 것인지 직설하고 있는 이 신조어들은 웰빙(wellbeing), 즉 잘사는 것이 얼마나 현대인들의 일상에 화두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아닐까?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웰빙이라는 용어는 밀레니엄의 시대에 들어와 등장한 것이지만, 그 개념적인 역사를 되짚어보면 근대 가족 단위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개량과 개선, 거주 환경의 균질화가 맥을 함께한다. 개인의 농공업 활동에 의한 부의 축적이 거의 어려웠던 전통적 사회와 다르게, 근대 도시의 노동자 계층은 지속적인 소비와 저축 같은 경제 활동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다양한 상업 활동의 본격화되고, 식민지 지배에 의한 국가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며, 기업 임금제, 금융 제도 개혁 같은 경제 정책이 본격화되었던 까닭이었다. 물론 빈부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였으며 세계적인 경제 공황도 찾아왔지만, 그만큼 사회적인 복리 후생을 통한 빈곤 해소와 구호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었다. 특히 산업화와 함께 소비의 주체로써 성장한 중산층 계층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공리주의적 국가관의 장려와 차티즘 운동(Chartism) 같은 노동 계층의 참정권 확보를 통해 민주적인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복지(welfare)라는 개념 역시 등장하게 했다.
애초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를 위한 웰빙으로써 국가적으로 접근했던 복지라는 정책과는 다르게 지극히 개인적인 층위에서의 웰빙은 시장을 통해 더욱 세분되었다. 일종의 생활의 방식의 일종으로서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적인 웰빙의 영역은 물론 사회적 복지와도 뗄 수 없는 형태로 이해되고 있으며, 동시에 또 다른 사회 계층적 구분을 위한 위세의 도구로써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일관된 정부 정책만으로 개인의 일상적 영위에 대한 삶의 질을개선하는 일은 분명 세금과 같은 현실적인 한계와 사회 갈등의 소지가 있을뿐더러 종종 소외된 개인에 대한 맞춤 복지의 부재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나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개인의 건강 유지를 위한 다수의 희소병 치료는 물론이고 성형 등 미용 목적의 의료 활동 역시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복지의 영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 노년층에 대한 건강 관리와 수용, 보호는 국가적인 정책이나 프로그램의 필요성만큼이나 개인적인 성향이나 취향, 가족관계 등 다양한 개인적 특수성을 고려한 복합적 웰빙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출산율 저조 역시 같은 맥락으로, 간편한 자금 지원 정책이나 직장 내의 휴가 조정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이 겪고 있는내외부적 문제에 대한 다각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더욱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개별적인 가정의 형편이나 가족 구조에 알맞은 웰빙이 작동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호황기를 누린 8, 90년대 세계는 당시 국제적으로 번성한 대중문화와 그것을 매개로 구조적으로 더욱 고도화된 물질 중심주의 시대에 다다르게 되자 점차 양 보다는 질적으로 나음에 대해 고민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대적인 웰빙 운동은 이제 개인의 감정 관리나 자존감 회복,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건강에까지 깊숙이 관계하게 되었다. 이는 개인의 안녕과 안정을 위해서 무엇보다 타인과의 유대감이나 관계를 형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인간이 가진 독특한 감정적,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특성을 근거로 한다. 분명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단체로 무리 생활을 통해 생존하던 사회적 동물이었다.
오래도록 지속하였던 빙하기와 수많은 자연계의 경쟁에서도 협력을 통한 사회성과 다른 존재들을 돌보는 관계성으로 생존의 효율을 높였다. 실제 포유류의 암컷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종에서만 발견되는 월경 현상은 자연 포식자에 노출 가능성을 높이는 매우 위험성이 많은 번식의 형태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이 독특한 사회성과 유대 의식으로 위험성을 극복하며 진화해왔다. 어찌 됐든 개인적 차원에서의 웰빙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성이 중요시 고려되면서 점차 개인 간의 소통의 방식과 감정 교감 역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방법으로 연구되고 있다. 실제로 남녀가 애정을 공유하고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고받은 배우자를 가진 개인이 독신자 경우보다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는 이러한 인간의 감정적이며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습성을 잘 설명하는 사례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현대 문명 사회가 개인에게 내려지는 가장 큰 법적 형벌은 외로움이 된다. 물론 사형이라는 가장 엄격한 징벌을 제외하고서는 개인의 범법적 행위의 대가로 사회 격리를 통한 고독감, 외로움이 처벌로서 선고된다. 당연히 교도소라는 공간 속에서도 나름의 관계성과 사회성이 존재하지만, 자유가 제한된 개인이 체감하는 외로움은 분명 가혹한 것이며, 또 얼마만큼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 역시 현대적인 웰빙을 이해하는 일에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부의 축적 정도가 아니라, 직장 등 사회 조직에서 개인이 경험하고 제공하는 역할에 대한 만족도와 성취도가 깊은 관련이 있다.
물질주의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의 가치와 소비라는 행위가 일상에 대한 만족감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주체를 투영해 의식을 확인하는 방법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타인과의 구별되는 자신을 스스로 의식 할 수 있는 나름의 지위나 계층성과 자아실현에 맞닿아있는 직업 활동과 그것에서 느껴지는 성취도는 일상에서의 자존감 극복과 자의식에의 위안으로써 또 다른 중요한 기점이 된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웰빙과 개인적 차원의 웰빙은 육체와 정신이 안정되고 조화롭게 삶을 추구 할 수 있는 형태로 결합하여야 한다. 그리고 소비주의 사회에서 고립되기 쉬운 개인의 구제와 구조 속에 함몰되는 주체성의 상실로 인한 외로움을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이것은 그저 마트에서 더 비싼 가격을 지급하고 정신적 만족을 얻는 유기농 제품의 소비 따위와는 다른 여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더 나은 삶에 대한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웰다잉(well dying)이라는 개인이 선택하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고민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디자이너들은 어떠한 웰빙에 기여하고 있을까? 그저 조금 더 보기 좋은 상품의 패키지 따위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은가? 과연 디자인된 모든 상품은 개인의 정신적 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디자인계에서 삶의 다양한 가치와 그것을 목적하는 방법으로서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을지 다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디자인 문화 전문 집필가
metafaux studio 대표,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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