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가상 현실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웹과 모바일 환경에서 제공되는 양방향 UX (사용자 경험) 디자인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플랫폼은 가상 현실이라는 개념적 세계에 대한 '개입'(intervention)으로 시각과 청각 등 사용자의 다양한 상호작용(interaction)을 유도하고 있다. 스킨스쿠버 장비 대신 컴퓨터 화면만으로 호주의 바닷속 전경을 들여다보고,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해외 여행지에서 실시간으로 길 안내를 받으며, 온라인 뮤지엄을 통해 암스테르담까지 가지 않고 반 고흐(Van Gogh)의 작품을 실제 박물관과 같은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최근에는 시각 영역을 넘어 청각과 촉각의 영역에서도 가상 현실과 관련된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광고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AR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나, 실제 배우 대신 가상의 인물이 연기를 대신하는 촬영 기법은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시각 미디어에서조차도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것이다.
수많은 뉴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게임 분야는 가상 현실 개발에 있어서 가장 노련한 선두주자가 아닐까 싶다.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 고와 같은 AR(증강현실) 기술을 사용한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VR 플랫폼의 게임들이 개발되었거나 진행 중이며 개발자들은 그들이 창조한 게임 안에서 사용자들의 실질적인 '몰입'(immersion)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철저하게 '유희'(entertainment)로서 성립되는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가상 세계에 대한 선행적 이해는 전기 미디어의 시대를 관통하며, 피부에 머무르고 있는 인간의 감각을 외부로 확장시키고 현실 세계와의 장벽을 허물고자 했던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통해 배양되었던 것이다. 실제 제프리 쇼(Jeffrey Shaw)나 모리스 베나윤(Mouris Benayoun)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자전거를 타거나(legible city, 1988), 사진으로 과거를 기록하는 행위(World Skin, 1997)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가상 현실의 의미론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이진법의 디지털정보에 의해 창조된 최첨단의 가상현실이라는 순수한 도상적 개념은 놀랍게도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의 이론과 상당한 접점을 가진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톤은 정신과 육체를 구분을 주장하였으며, 모방이라는 방법으로 자연 내면에 숨겨진 순수한 본질의 세계를 찾고자 했다. 쉽게 말하자면, 영혼과 육체가 구별된다는 이원론적 논리는 현실에 종속된 육신과 분리된 인간의 의식만이 입장 할 수 있는 가상 현실의 구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가상 현실은 인공으로 새롭게 창조된 공간 임에도 현실 세계의 물리적, 관념적 법칙에 대한 상당한 모방을 근거로 하고 있는다는 점에서 분명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데아적 세계관과 닮아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가상 현실은 그 속에 투영된 순수한 의식의 초월적인 욕망을 실현키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인류가 수천 년 갈구했던 의식의 자유라는 이데아의 세계는 가상 현실이라는 신대륙을 통해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뇌 자극 감지 기술과 뇌파의 이미지를 재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순수 의식의 유토피아 찾기를 가속화하는데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맞고 있다. 당연히 뇌 과학의 발전은 전기로 가공된 인공의 세계에서도 인간이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감각을 되살리는 데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들, 흔히 말하는 오감의 영역은 전부 우리 뇌 안에서 일시적으로 발생되는 전기 신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원론자들은 고유한 신체에서 감각되고 영향 되는 인간의 경험은 독자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도 결국 신체 기관의 일부가 아닌, 경험을 매개하는 기관들의 기능으로서 결과되는 현상일 뿐이다. 이것은 조금 더 유물론적인 기술 진보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 인체 기관과 똑같이 기능하는 전자 기관을 생성하는 일마저 가능하다면, 그 안에서 전기적 기관의 기능 의한 독자적 의식이 발생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얼핏 영화같은 이 이야기는 사실 기획 연재의 첫 편에 언급했던 인공지능의 발전과도 깊숙이 연결되는 것으로, 초 인류 즉 포스트 휴먼(Post-human 또는 Tranhuman)이라는 학문적 영역은 실제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기관과 학자들이 복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과학 기술의 중추적 이론 중 하나이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신체를 불필요하는 자유로운 의식만이 남은 초인류라는 새로운 인류 종의 등장과 현생 인류의 종말이 인과관계에 있다는 사실로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다. 난해한 기술적인 이야기는 차치해 두고,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도 가상 현실이 신체라는 경로를 통해 감각을 경험하는 실존적 세계보다 높은 교환, 경험 가치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와의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때가 오면, 육체라는 한계에 얽매여 있는 지금의 우리들보다 가상 현실 안에 더욱 어울리는 존재는 당연히 그들, 초인류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무엇이든 가능한 유토피아로서 보기 어려워진다. 아니, 오히려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과연 가상 현실과 실제 세계의 구분이 모호해 질 수 있는지, 인간이 그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실제 벌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의 경험이 실제 세계에서의 경험과 같은 감각의 것이 될 수 있는지 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의문은 16세기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를 통해 사유되었던 적이 있는데, 우리가 인식하고 감지하는 현실이 꿈이나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는 일은 사실 우리의 독자적 의식만으로는 영영 해결불가능한 문제일지 모른다. 영화 매트릭스 속 거대한 기계 안에서 에너지를 착취당하며 호스에 의지한 채 평생을 기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영원히 그것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찌됐든 가상 현실이라는 공간은 우리의 더럽혀진 몸은 허용하지 않는, 순수한 의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다. 당연히 공간적 한계나 물리적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상상력과 디자인도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무한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막대한 책임이 따라야 할 것이다. 현실 세계와 똑같은 수준의 규범과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일은 분명 상당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며, 개인 간의 분쟁과 사회 간의 분쟁, 문화적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 역시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가상 현실을 제공하는 기업의 구조 안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쪽이 됐든 개인의 자유와 인류 공리적 안녕을 위해 진화 할 수 있도록 방향 설정에 신경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꾸준한 사회적 합의와 가상 현실에 대한 나름의 원칙들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 나가도록 하는 정책 디자인의 문제가 당장의 깜짝 놀라는 가상현실 비디오 한편을 제작하고, 흥미진진한 VR 게임을 만드는 일 보다 미래 디자이너들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 될지도 모르겠다.
디자인 문화 전문 집필가
metafaux design 대표,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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